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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분명한 기준, 진실한 예배카테고리 없음 2020. 1. 6. 06:00
2020년 1월 6일 / 매일성경 / 창세기 4장 1-26절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창4:3-5)’
아담과 하와 사이에서 난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각자의 일터에 가져온 제물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농사꾼이었던 가인은 ‘땅의 소산’을, 목동이었던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바칩니다. 그런데 이 제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놀랍습니다. 아벨의 제물만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악을 행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인은 분노합니다. 그리고 분노의 대상이 된 동생 아벨을 들판으로 유도한 후 쳐죽입니다(창4:8). 하나님은 가인에게 ‘네 동생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가인에게 아벨을 죽인 사실을 정말 모르셔서 묻는 것이 아닙니다. 가인에게서 진실한 고백, 죄에 대한자백을 받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죄에 대한 자백은 커녕 오히려 하나님께 이렇게 따져 묻습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4:9)’ 가인은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그 어떤 책임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의 과정을 목도하면서 다음과 같은 한가지 질문이 듭니다. ‘하나님은 왜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을까?‘
명확한 근거는 없지만 상대적으로 가인의 제물은 아벨의 제물보다 못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고, 가인은 그저 ‘땅의 소산으로’ 즉 땅에서 난 곡식 중 일부를 드렸던 상황을 비교하자면 아벨은 자신의 소유 중 가장 좋은 것을 드린 반면, 가인은 품질에 관계 없이 소산의 일부를 떼어 드렸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예배를 준비하고 행하는 자의 태도입니다. 양의 첫 새끼를 드렸다는 사실은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배여 있는 것입니다. 반면 땅의 소산 중 일부를 드렸다는 사실은 예배에 대한 그 어떤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지극히 형식적이며 영혼이 배제된 예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인간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의 눈은 결코 속일 수 없습니다. 아무리 겉이 화려하고 아름다워 보여도 마음이 썩으면 하나님은 결코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겉으로는 보잘 것 없어도 자신의 전 재산인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부어드렸던 여인의 예배를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신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회복해야할 예배는 가장 최고의 것을 드리고자 하는 마음의 예배, 진실한 예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영과 진리의 예배자를 찾으시고 그 예배를 받으시는 분입니다(요4:23). 그리고 진실한 예배자를 자신의 선한 역사의 도구로 삼으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취하나 하나님은 예배자의 순전한 마음, 그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삼상16:7).
아벨의 예배는 받으시고 가인의 예배를 받지 않으신 하나님의 그 분명한 기준은 다름 아닌 ‘예배의 진실함’에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부디 우리 모두가 오늘도 진실한 예배를 회복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자로서 하나님의 역사를 세워가는 복된 여정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