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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마가 가질 수 없는 어린나귀의 축복카테고리 없음 2020. 3. 27. 08:28
2020년 3월 27일 / 매일성경 / 마가복음 11장 1-19절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막11:3)'
예루살렘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성전 입성 당시의 모습은 세상의 여느 왕들처럼 결코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도리어 그의 행색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는 제자들을 시켜 마을 맞은 편에 있는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새끼를 타고 그의 성전에 입성하십니다. 세상에서 누릴만한 모든 권세를 가지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에 연연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곁에 있었던 제자들이나, 멀리서나마 예수님을 따르는 주변 사람들은 이와 같은 예수님의 행적을 이해하기가 힘들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의 뒤를 따르며 '호산나! 다윗의 예수'의 이름을 외치며 함께 예루살렘에 입성하게 됩니다. 이제 예수님은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의 한계를 넘어 모든 이들을 구원할 구원자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하십니다.
그는 예루살렘의 모든 상황을 낱낱이 살펴 보십니다. 하지만 거룩한 처소가 되어야할 예루살렘은 부정과 타락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마지막 때가 다가올수록 어둠의 세력은 점점 치밀한 전략으로 거룩한 교회를 공격하고, 무너뜨리려 합니다. 세상은 점점 험악해져가고, 이 험난한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하루 하루를 두려움 속에서 지낼 수 밖에 없는 시대를 살아가야만 합니다.
슬픈 현실이지만 예수님은 이제 그 때가 가까이 왔음을 직감하셨을 것입니다. 그 때는 바로 십자가의 수난입니다. 이 모든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십자가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어둠과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영원한 승리를 안겨다 주는 능력이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을 쫓아 십자가의 수난 앞에서 우리의 절망을 직면하고, 십자가의 능력을 붙잡는 삶으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세상이 보기에 볼품 없고, 힘 없는 나귀새끼라도 '주가 쓰시겠다'고 하면, 주인되시는 예수님을 따라 영원한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영광은 준마가 누리고 있는 화려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입니다. 지금은 험난한 삶의 여정에 지쳐 넘어질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우리의 인생이라 할지라도, 주님을 붙잡으면 세상의 부귀영화보다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소망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어쩌면 제자들과 같이 이해하지 못할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고,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길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지금 내 삶의 모습이 초라해 보일지라도 그 초라함을 쓰시고자 하시는 주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세상에서 그 어떤 것도 경험할 수 없는 영원한 기쁨과 즐거운 천국의 소망을 기대하며, 그 축복을 누리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나귀새끼 같은 존재라 하더라도 말이지요.
오늘 우리는 나의 연약함을 아시고, 나의 부족함 그대로 사용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며, 주가 쓰시는대로 기쁨으로 순종하며 십자가의 축복을 누리는 삶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