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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당한 타협이 아닌 완전한 믿음
    카테고리 없음 2019. 3. 6. 10:49

    ​​적당한 타협이 아닌 완전한 믿음

    ​2019년 3월 6일 / 매일성경 / 느헤미야 6장 1-14절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곧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느6:14)’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표현 중 ‘적당히’라는 부사가 있습니다. 매사 어떤 일들을 틈이 없게끔 하려고 하는 완벽주의자들이나 쉽게 설득이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로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적당히 좀 해.’ 이처럼 우리는 무슨 일이든 ‘적당히’,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처신하고 행동하는 것이 미덕이라 여기는 문화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어려움 없는 삶은 없다지만 세상이든 사람이든 그저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면 마주할 어려움도 그럭저럭 잘 피해갈 수 있습니다. 순간순간을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판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간혹, 스스로 옳지 않는 일이라 할지라도 피해를 입지 않는 적당한 선에서 눈 감아주면 어렵지 않게 지나갈 일들이 많다는 것이지요.

    아마 느헤미야도 처음부터 자신을 해하고자하는 산발랏과 도비야 무리들과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했다면 순조롭게 성벽 재건 작업을 진행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적당히’를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느헤미야의 이 강직함 때문에 산발랏과 도비야가 더 느헤미야의 심기를 건드리고, 심지어 죽이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적당히’를 모르는 강직한 느헤미야는 오노 평지에서 만나 협상하자는 산발랏과 도비야의 제안을 단번에 거절합니다. 이후 같은 제안을 네 번이나 받았는데도 느헤미야의 대답은 변함이 없습니다. 심지어 느헤미야가 성전 재건의 목적이 유다의 왕이 되기 위한 것이라는 헛소문을 퍼뜨리고 있음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습니다(느6:9).

    결국 산발랏과 도비야는 선지자 스마야를 매수하여 성전에서 느헤미야를 처단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스마야의 이상 행동에 저들의 계략을 금새 알아차립니다(느6:12). 하나님께서 그의 강직함을 통해 산발랏과 도비야의 모략을 깨닫게 하신 것이지요.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강직하게 밀고 나간 그의 믿음이 곧 승리의 결과를 낳게 했습니다.

    어쩌면 인생이란 지금 당장 타협하지 않으면 막대한 손해를 볼 것 같은 불안감의 연속일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손해가 있을 것 같으면 협상 테이블에서 자신의 의지를 꺾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마치 ‘월가의 늑대들’처럼 이러한 타협점들을 잠식하고 지배하게 된다면 엄청난 부와 성공을 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타협하는 인생의 대부분은 실패로 끝납니다. 타협은 그야말로 현재를 위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타협하다 어느 순간 존재에 대한 목적마저 상실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타락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타협으로 부와 성공을 얻을 수는 있어도 인간 존재의 참된 의미와 진리를 깨달을 수는 없습니다.

    느헤미야의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그의 목적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통해 다시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로써 유다의 온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와 주를 예배하고 주의 말씀을 듣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주변에서 밀려드는 어떤 타협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유일한 타협은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그의 행보는 적당할 수 없었습니다. 성벽을 쌓는 돌 사이에도 틈이 없을 정도로 견고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주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험과 유혹으로부터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적당히’가 통할 수 있어도 기독교 신앙은 ‘적당히’로는 안됩니다. 적당히 신앙생활 하다가는 언제고 사탄의 공격으로 넘어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적당히 믿어서는 안됩니다. 완전히 믿어야 합니다. 느헤미야처럼 주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시험과 유혹 앞에서 순결한 믿음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이 땅에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예수 복음을 외치며 죽음을 맞이한 순교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에게는 예수를 부인하면 살 수 있는 타협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들은 결코 그 이름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희생은 당시에는 아무런 유익이 없어보였지만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그들은 뿌린 순결한 믿음의 씨앗이 열매를 맺고, 우리 모두가 그 열매를 누리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느헤미야가 산발랏과 도비야의 계책에 말려 적당한 선에서 타협했다면 그는 죽임을 면치 못했을 것이며 성전 재건도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신앙은 어떻습니까? 또 세상을 어떻게 바라고 있습니까? 당장의 이익을 위해 불의한 일에 적당히 타협하고 있지 않습니까? 신앙을 위협하는 시험과 유혹에 복음을 부인하고, 예수를 욕되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억합시다. 기독교 신앙은 적당한 틈이 아닌 빈틈없는 완전한 믿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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