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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은혜는 없습니다

쿠스스토리 2020. 2. 12. 05:33

2020년 2월 12일 / 매일성경 / 창세기 27장 30-40절

‘에서가 이르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이르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창27:36)’

야곱이 이삭으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받은 후 사라집니다. 그리고 뒤늦게 에서가 집으로 돌아와 별미를 들고 아버지의 방에 들어섭니다. 그는 상당히 들떴습니다. 드디어 이제 장자로서 예정된 유산을 상속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에서가 받을 유산과 축복은 어찌 보면 당연한 권리였습니다.

그러나 동생 야곱의 속임수로 그는 장자의 권리와 축복을 모두 빼앗겼습니다. 이삭 또한 자신이 축복해준 아들이 에서가 아니라 야곱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나서 ‘심히 크게’ 떨었습니다(창27:33). 하지만 이는 세심히 확인하지 않은 그의 명백한 실수였습니다. 에서는 울부짖으며 이삭을 원망합니다. 그리고 남은 복이라도 달라며 이삭을 붙잡고 애원합니다(창28:36).

하지만 이삭은 그 축복을 야곱에게 남김 없이 줬기에 에서가 받을 복은 없다고 못을 박습니다. 오히려 태중 가운데 전해진 하나님의 예언처럼 에서가 야곱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재차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에서는 억울합니다. 하지만 억울할 일도 아닙니다. 일전에 그는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그의 장자권을 야곱에게 넘겨주었고, 이삭의 명령 또한 안일하게 여겼습니다.

방심과 안일함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렇다면 에서는 왜 그토록 방만한 행동을 했던 것일까요? 그가 받을 장자의 축복, 유산의 권리를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 어떤 긴장도 느끼지 못했고, 당연한 권리를 이미 받은 것인양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생 야곱에게서 장자의 축복을 빼앗길 것이라 추호도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당연한게 누릴 수 있는 상황과 환경, 지위를 가졌다 하더라도 이 세상의 모든 만물과 질서와 세계는 그 어느 것 하나 당연하게 누리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기독교 신앙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구원을 당연히 받아 마땅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때문에 당연히 받아야할 은혜도, 당연히 받아야할 축복도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마암아 받은 구원이요 은혜라는 사실, 또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과 용서에 의한 것임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은혜를 당연히 여기지 마십시오. 주님의 다함 없는 긍휼로 오늘도 주님 전에 나아가 은혜를 간구할 수 있음에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그 은혜를 빼앗기지 않도록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십시오. 거룩한 긴장을 놓치는 순간, 은혜는 없어지게 마련입니다. 당연한 것이라 여길 때 신앙은 해애히지기 마련입니다. 안일함 때문에 장자의 축복을 빼앗긴 에서와 같이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