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뒤로 돌아서지 말라
결코 뒤로 돌아서지 말라
2019년 6월 18일 / 매일성경 / 히브리서 10장 26-39절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10:39)’
거듭 언급하는 내용이지만 예수를 믿었다고 해서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정확한 표현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약속 받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곧 구원의 시작인 것이지요. 좁은 문을 통과했다고 해서 바로 천성이 나오지 않습니다. 구원을 향한 여정 길에서 수많은 시험과 훈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구원의 참 보증이 되십니다. 예수님만큼 확실한 보증은 없습니다. 이 보증을 근거로 반드시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또한 결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입니다. 구원은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자들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받았지만 약속을 붙들지 않는 자들에게 구원은 없습니다.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을 보면 구원의 약속을 끝까지 붙들지 못하고 세상으로 돌아간 변덕스런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초반에 주인공 크리스천과 함께 동행했던 ‘온순(또는 변덕, Pliable)’은 절망의 늪을 보자마자 다시 멸망의 성으로 돌아갔고, 성경 인물이기도한 ‘데마(Demas)’는 크리스천과의 짧은 동행 후 은광의 유혹을 쫓아 떠났습니다.
같이 천성을 향해 나아가자는 크리스천의 제안에 냉정하게 거부했던 ‘고집(Obstinate)’과는 달리 변덕은 호의적인 마음으로 크리스천과 함께 여정길을 오릅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절망의 늪에 빠집니다. 크리스천이 늪 깊은 곳에서 허우적 거리는 모습을 보고 비교적 얕은 곳에 있던 변덕은 늪에서 빠져나오자마자 크리스천을 떠납니다.
그에게 천성에 대한 어느 정도의 기대와 믿음은 있었으나 그의 믿음은 어려움을 넘을 만한 수준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금방 포기하고 뒤로 물러섭니다. 늪에 빠지느니 다시 멸망의 도시로 돌아가는 게 낫다고 말합니다. 예수 믿는 삶이 이렇게 어렵고 힘든 길이라면 차라리 안 믿는 것이 나아 보입니다.
데마는 자신의 유혹을 뿌리친 크리스천과 소망에게 조심하면 아무 문제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은광의 위험성을 익히 알고 있었던 크리스천은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결국 데마는 자신을 따르는 두마음을 비롯한 친구들과 함께 은광으로 떠났습니다. 이는 초반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였던 데마가 바울이 옥에 갇힌 후 세상을 사랑하여 떠난 모습(딤후4:10)과도 같습니다.
예수 믿으면 남 부럽지 않게 잘 먹고 잘 살 줄 알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의 모습들을 많이 목격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의 삶이 더 행복해 보이고 즐거워 보입니다. 하루를 넘기기도 힘겨운 여정에 오히려 세상이 부럽게 느껴집니다. 믿음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토록 미련한 인생을 사는 건지 때론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합니다. 당장이라도 은광이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러워하는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은광은 언젠가는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불의 심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미련을 둘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불타는 세상을 돌아볼 필요도 없습니다. 미련한 마음으로 돌아봤다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처를 기억하십시오(눅17:32).
오늘도 믿음의 여정을 거니는 우리네 삶에 가장 조심해야할 마음과 행동은 뒤로 물러서거나 뒤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는 여전히 영원한 약속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 모습이기 때문이지요. 화려한 세상은 언제 불탈지 모르는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삶은 뒤돌아서지 않고 천성을 향해 나아가는 승리의 발걸음입니다.
예수께서 구원의 영원한 보증이 된다면 고난은 곧 내 삶에 다함 없는 유익과 축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결코 돌아보지 마십시오. 뒤로 물러서지 말고 영원한 나라를 향해 계속 전진하십시오. 비록 고난과 시험이 내 영혼을 짓누른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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